7월 9일 오전 8시, 동천역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면서 두 장의 사진을 찍었다. 최근에 신호 체계가 조금 바뀐 삼거리이다. 매일 건너는 왕복 6차로와 왕복 3차로 간의 일반적인 교차로이지만 바뀐 신호는 내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옆의 6차로 도로(수지로)는 꽤 통행량이 많은 도로이다. 수많은 마을버스, 시내버스, 광역버스, 심지어는 M4101까지 다닌다. 동천역의 개통으로 일부 버스가 신수로 쪽으로 빠지기는 했지만 역시 아파트의 수요는 무시할 수 없나 보다. 반면 3차로 도로는 매우 통행량이 없다. 안에는 물류창고와 오피스텔 유타워 정도가 끝이다. 심지어 신수로 쪽에서 들어오는 방향의 경우 좌회전도 되지 않는다. 즉 6차로 도로에서 3차로 도로로 갈 수 없다.
예전에는 단순한 신호였다. 6차로에 직진 신호가 나오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30초 정도의 짧은 보행자 신호가 나왔다. 6차로의 직진 신호가 길다 보니 전체 사이클이 길어서, 보행자 신호를 놓치면 그 짧은 거리를 긴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보면 집에서 아슬아슬하게 나온 후 8분 배차의 신분당선을 놓치기 일쑤였다. 항상 집에서 10분 일찍 나오는 것이 정말 힘들다.
그런데 최근에 신호가 바뀐 후에는 조금 달라졌다. 어느 날 보니 신호가 눈에 띄게 길어져 있었다. 3차로 도로의 교통량이 대부분 유타워로 들어가는 것이라 그런지 6차로의 직진 신호 동안 계속 보행자 신호를 주는 것이었다. 도로명으로 부르고 싶은데 3차로 도로는 찾아봐도 이름이 잘 안 나온다. 도로명 부여가 안 된 건지 잘 모르겠다.
직접 재 봤다. 처음 50초간 본 신호가 현시된 후 50초간 점등한다. 3차로 건너는 데에 무려 100초를 주는 것이다. 어차피 우회전의 경우 건너는 사람이 없으면 차가 알아서 잘할 것이고, 아침 시간에는 막혀서 그렇게 하지도 못할 것이니 보행자 신호를 이렇게 길게 줘도 큰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많은 차가 지나가는 동안 나는 옆에서 이렇게 여유를 즐길 수 있겠구나. 아침에 버스들과 자가용으로 그 막히는 길옆에서도 천천히 걸어갈 수 있는 여유가 있구나. 집에 가면서도 이렇게 또 생각을 해 봤다.
블로그 글을 쓸 때는 보통 영어로 간단한 키워드를 붙인다. 그런데 이 글의 제목을 영어로 옮기려니 바로 떠오르지는 않아 검색해 보았다. Relaxation? 그렇게 썩 맘에 드는 단어가 보이지 않았다. margin이 보였는데 보통 개발할 때 쓰던 단어라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나 보다. 그러나 결국 그 단어로 결정했다. 어쩌면 이미 일상이 여유라 그런 단어가 특별히 필요하지 않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