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만큼 더 살았더니

2023-02-11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눈웃음이 참 예쁜 친구가 있었다.

어린 시절이라는 변명 하에 모든 것이 어설펐다. 별일은 없었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지역이 달라져 더는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당시는 쥬얼리폰(KTF향 SPH-W3300)으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중학교 어디로 가냐고 물었을 때 띄어쓰기도 없이 왔던 그 답장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언제까지나 주변에 있을 줄 알았는데 다른 지역이라니.

나안가이사가알잖아너도?

전화번호는 그대로였기에 여전히 서투른 방법으로 연락을 시도해본 적도 있지만 잘 되었을 리가. 중2병 그 자체였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후에는 가끔 페이스북 친구 추천 등으로 보이는 소식으로 대학교는 서울로 왔구나 정도를 본 수준이었다.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것으로 생각했다. 많은 사람을 더 만났고, 좋은 - 이불킥 하기도 제격인 - 추억으로 기억 속 한편에 남아있었다.


임재범 콘서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거의 핸드폰만 보며 집에 들어가고 있는데 아파트 단지 후문에서 정말 우연히 그 친구의 얼굴을 본 느낌이 났다. 평소에 떠올리고 있던 얼굴이 당연히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인덱싱이 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지나칠지 말지 정말 한 3초 멈춰서 고민하다가, 이전에도 이렇게 어릴 적 친구로 추정했지만 지나쳤던 사람 생각이 나서 이번에는 꼭 한번 확인하고 싶어졌다. 급하게 버스에서 내려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고, 횡단보도를 기다리며 살짝살짝 보았다.

건너서도 타이밍을 못 잡다가 건물로 들어갈 느낌이라 결국 불러세웠다.

"저기요, 혹시 OOO씨 맞으신가요?"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누구신데요?"

"아 저 초등학교 때 박현민입니다."

"우와!"

맞았다.
그 눈웃음은 그대로였다.


언제인지는 못 들었지만 다시 이사 왔다고 한다.

명함을 한 장 드렸다. 이젠 둘 다 직장인이 되어 있나 보다. 13살과 14살 그 사이 어딘가에서 사라졌는데, 어느덧 27살. 언젠가 밥 한번 먹자는 상투적인 인사로 떠나보냈다.

전화번호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물증은 없지만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의 뒷모습으로 어림짐작했다.

어렴풋이 봤는데도 그 8자리 숫자는 바로 다시 각인되었다. 요즘에야 전화번호 자체를 볼 일이 거의 없다고 하지만 문자메시지 시절만 해도 나름 외우던 번호들이 있었다. 손과 입이 기억하던 패턴이었다.

졸업앨범도 '그 동창' 이후 오랜만에 꺼냈다. 다들 그대로였다.

다음 날, 고심하여 여러 주저리주저리 끝에 결론은 진짜로 밥 한번 먹자는 카톡을 보냈다. 프로필의 배경 사진은 아마도 남자친구이겠지. 어떻게 해볼 생각은 없다.

안녕?
어제 마주친 게 정말 신기해서 찾아봤는데 카톡 친구로 남아 있더라.

세상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어. ... (후략)

여러 가지 뻘짓으로 과거에 이미 차단당한 것인지 반응은 없었다.


어떻게 다시 마주쳤는데 밥 한 번도 함께할 수 없음에 아쉬웠다. 그러나 결국 다 내 행동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익숙하다.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좋아했던 것은 누군가를 좋아해서 고민하고 때로는 슬퍼하던 그 시절 나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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